일본 로비에 침몰한 ‘동해’

국제 표준지도에서 사라지는 계기가 마련된 줄 알았던 ‘일본해’가 되살아났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로비에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다.

세계 바다 명칭의 표준이 되는 바다 지도 ‘해양의 경계’를 편찬하는 IHO는 1953년 3차 개정판까지는 줄곧 동해를 ‘일본해(Japan Sea)’로 표기해 왔는데, 49년 만에 발간하려는 4차 개정판을 위해 지난 8월 초순 완성한 최종안에서는 “한국과 일본 등 연안국들이 통일된 명칭에 합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빈칸으로 두고 각 회원국에 통보했다.

집요한 일본 =‘일본해’가 빈칸으로 남겨지게 되자 일본열도가 발칵 뒤집혔다. 1929년 처음으로 발간된 이래 ‘해양의 경계’는 세계 바다 명칭의 표준처럼 역할해 왔다. IHO 최종안은 지난 8월 중순부터 69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투표에 부쳐졌고, 11월 말까지 투표가 끝나 과반인 35개국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확정될 판이었다.

일본 정부는 즉시 “세계 지도의 97%가 일본해로 쓰고 있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철회운동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언론들은 “일본해가 사라지게 됐다”고 대서특필하며 정부를 채근했고, 일본의 각국 대사관과 국제기구 담당 직원들은 1대1로 해당국 정부 관계자와 국제기구 직원들을 만나 설득작업을 전개했다. ‘5만부의 홍보책자를 만들어 들고다니며 철회운동을 펴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결국 3인 이사진이 투표과정을 전면 중단시킴에 따라 4차 개정작업 전체가 일단 중지됐다.

◆ 예상 못한 한국정부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22일 “우리도 일본에 대항해 뛰기는 했지만 3인의 이사진이 일방적으로 투표를 중단시킬 줄은 몰랐다”며 “공식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일본이 새로운 이사진에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3명으로 구성된 IHO 이사국은 9월 초 그리스·미국·칠레로 바뀌었다. 정부는 ‘일본측 로비에 이들이 넘어갔다’는 말이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일본정부의 공개적 로비에 대해 한국정부는 “20년간에 걸쳐 겨우 만들어진 4차 개정판 최종안을 일본이 중단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안이하게 말해왔다.

외교부는 장재룡 주(駐)프랑스대사를 20일 IHO 사무국이 있는 모나코로 긴급 파견해 ‘국제관행상 투표 도중 최종안을 철회하고 투표를 중단시킨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항의했다.

(조선일보 2002-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