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前부터 쓴 이름 ‘東海’ ......

우리 주변의 산·강·바다는 원래 아무런 이름이 없었지만 그것과 더불어 생활해 온 사람들이 그들의 의식에 적합한 명칭을 붙이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명칭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가치관의 표현이며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다.

우리나라 문헌에 동해(東海)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고구려 동명왕 기사다. 그 내용은 북부여의 자리에 장차 고구려가 건국될 것이니 북부여는 이곳을 피하여 동해가의 가섭원으로 나라를 옮기라는 것이다. 이때가 중국 한(漢)나라의 신작(神爵) 3년으로 서기로는 BC 59년이니 ‘동해’는 지금까지 우리 민족이 2000여년 동안 사용해 온 유구한 명칭이다. 또 고구려의 장수왕이 부왕(父王)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서기 414년에 세운 광개토대왕비에도 ‘동해’라는 명칭이 나온다.

이에 비하여 ‘일본해’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도 동해라는 명칭을 우리가 처음 사용한 지 700년이 지난 후에야 등장한다. 그것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서인 ‘일본서기’나 ‘고사기’에는 나타나지 않고 중국의 신당서나 우리나라의 삼국사기에만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 문무왕조에 보면 “왜국(倭國)이 이름을 고쳐 일본(日本)이라 하였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해 뜨는 곳에 가깝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붙였다”고 하였다. 또 신당서에는 함형원년(咸亨元年·서기 670년·문무왕 10년)에 사신을 파견하여 “왜라는 국명이 나쁘기 때문에 일본이란 국명으로 바꾼다”라는 기사가 있다.

‘일본해’라는 명칭은 이로부터 다시 1000년이 지난 1602년, 서양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만든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에 처음 나타난다. 우리가 동해라는 명칭을 사용해 온 지 1650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일본해’라는 명칭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2000년 전부터 우리 민족이 당당히 사용해 오던 동해라는 명칭이 위협받게 된 것은 1910년 우리의 주권이 일제에 의하여 강탈당한 이후이며, 일제는 교묘히 동해를 일본해로 바꾸어 놓았다. 가장 중요한 것이 1929년 국제수로기구(IHO)에서 처음으로 세계 바다의 이름을 정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우리가 일본에 주권을 빼앗겨 일본 대표만 참석하였기 때문에, 동해라는 명칭은 거론되지도 못하고 일본해로 명명된 것이다.

지난 7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5회 동해 지명에 대한 국제학술 세미나’에서 유엔 지명전문가회의 의장 피터 레이퍼는 “하나의 공통 지명에 합의하지 못한 경우에는 각 나라가 쓰는 지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유엔 결의안을 소개하면서, 지명을 정할 때는 무엇보다 ‘역사성과 대표성’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원칙에 합당하려면 400년밖에 안 된 일본해보다는 2000년의 역사를 지닌 동해라는 명칭으로 통일되어야 한다.

이번에 IHO에서 ‘일본해 삭제안’을 만들어 회원국들의 의견을 묻는 찬반 투표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일본의 로비에 놀아난 신임 이사국들이 투표를 중단시킨 것은 국제 관례를 무시한 불법행위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IHO는 11월까지 회원국의 의견을 모아서 내년 4월까지 다시 최종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 정부는 모든 외교력을 동원하여 IHO 회원국들에 ‘동해’라는 이름이 지닌 유구한 역사성을 설득시켜서 이번 기회에 그 이름을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 (이상태 국사편찬위원회 연구편찬실장)

(조선일보 2002-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