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한국해 표기 논란

최근 유엔지명전문가회의 용어위원회 나프탈리 캐드먼 위원장의 ‘한국해’ 지지 표명을 계기로 동해 표기 운동 재검토 요구 움직임을 전한 한국일보 9월 10일자 A26면 ‘정부 동해표기 운동 재고 목소리’ 기사에 대해 이기석 서울대 지리교육과 교수가 반론을 보내왔습니다. 이 교수는 동해연구회 부회장을 맡아 10년 전부터 ‘동해’를 국제 지명으로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세계지도에서 동해(East Sea) 수역이 일본해로 널리 표기되는 것을 시정하기 위해 1992년 이후 정부와 관련단체는 국제기구 등에서 동해 표기의 정당성을 계속 제기해왔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최근 민간 지도제작사나 출판사에서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는 등 동해 표기 관련 한일분쟁에 대한인식이 점차 확대돼 가고 있다.

‘일본해’가 국제적으로 사용된 결정적인 계기는 1929년 국제수로기구(IHO)에서 ‘해양의 경계’라는 책자에 동해 수역을 일본해로 표기하면서부터다. 지명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국제회의로는 유엔지명표준화회의와유엔지명전문가회의가 있다.

두 회의 모두 세계 지명의 표준화와 관련된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사안을 다루며 지명 분쟁에 대한 결정권이나 조정권은 갖고 있지 않다. 다만 국가간 분쟁이 있을 경우 단일명칭 합의에 이를 때까지 병기를 권고하는 결의를 채택해 지명분쟁 당사국의 협의를 촉구한다.

두 기구 모두 1998년부터 공식으로 동해 수역의 표기분쟁을 확인하고, 한일양국이 협의해 명칭문제를 해결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서양고지도의 지명표기 연구결과와 이스라엘의 한 지도회사가 ‘한국해(Sea of Korea)’를 사용한 사례를 들어 ‘동해 표기 운동 재고’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실현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한국해’ 명칭이 18세기 서양고지도에서 많이 사용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명칭은 외국인이 만든 ‘외래지명’(Exonyms)이다.

유엔은 모든 국가가 외래지명을 쓰지 않거나 사용을 줄이도록 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켜 시행중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北京’의 이름을 오래 전부터 서양인이 사용한 외래지명인 ‘Peking’에서 ‘Beijing’으로 바꾸어쓰고 있다. 우리는 역사상 한번도 ‘한국해’를 사용한 적이 없다.

한국해는 서양인들이 과거 일정기간 동해 수역에 편의적으로 사용한 명칭이다. 그래서 역사 이래 고유한 동해 명칭에 이제 와서 외래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고 본다. 현재 국제지명의 가장 중요한 일반원칙은 관련지명의 당사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명칭을 가능한 그대로 표준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7,000만 한국민이 사용하고 있는 명칭인 ‘동해’ 그대로 표준화해야 한다는 논리만이 국제적으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이스라엘 지도회사의 정보를 보내 온 캐드먼 교수는 유엔지명전문가회의에있는 10개 실무위원회 중 용어위원회 위원장이다. 이스라엘 지도회사의 한국해ㆍ일본해 병기와 캐드먼 교수의 지지에는 감사하지만, 그 표기변화는유엔지명전문가회의의 의사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동해 표기를 국제표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국제회의에서 문제제기 못지않게 해외홍보활동 강화가 중요하다. 최근 일본 정부는 그간 우리의 노력으로 동해표기를 병기한 세계지도를 낸 출판사들은 물론, 동해연구회가 개최한 동해 명칭 국제세미나에 참가한 세계적인 석학들을 일일이 찾아가 일본해 단독표기의 정당성을 설득하는 적극적인 공세를 펴고 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더 체계적인 홍보전략을 수립하고, 정부와 관련 민간단체가 유기적으로 협력해 전방위적으로 홍보를 벌여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일본이 양자협의에 응하도록 국제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일보 2004-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