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회담 문서 공개 이후

한·일협정 조인 결과 일본정부로부터 받은 무상자금의 용처 가운데 국민 의식에 가장 뚜렷이 각인된 곳이 ‘포항종합제철(지금의 포스코)’이다. 무상자금의 16.2%(원화로 174억4200만원)가 포철의 건설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 회사의 작년 한 해 매출액은 19조7920억원이었다. 현재의 환율로 대충 계산하면 188억5000만달러.

물가상승분,환율 등을 감안한다고 해도 당시로선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규모다. 파급효과는 다시 그 수백 수천 배에 이르렀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무상 3억달러가 아니라 300억달러,3000억달러가 걸린 협상이라 하더라도 그 때 같은 ‘굴욕회담’ ‘구걸외교’를 감수하려 할 리가 없다(가진 것 있고 없고의 차이가 이렇다).

40여년 만에 공개된 회담 문서는, 대부분 이미 알려진 일이기는 해도 다시금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을 심하게 헤집어놓는다. 돈 몇억달러를 36년 식민통치의 고통 원한과 맞바꾸어 받으면서 이렇다할 사과 한 마디 듣지를 못했다. 오히려 일인들은 ‘경제협력 자금’입네, 무슨 ‘독립축하금’입네 하고 생색을 내려 들었다.

더욱이 그 돈에는 강제징병 및 징용으로, 또 정신대 강제동원으로 끌려간 수많은 피붙이들의 목숨값, 고통값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걸 정부가 일괄적으로 받아내 그 대부분을 경제개발에 투입했다. 일제 피해자들에게 돌아간 것은 무상자금의 9.7%에 그쳤다. 그나마 부상자 등 생존자들은 보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피해 당사자들과 유족들이 어떻게 분노를 참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돌아보면 한.일협정이 체결되었던 1965년은 광복후 기껏 20년 되던 해였다. 6.25 참극을 겪은 지는 불과 12년 만이었다.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정말이지 가난뿐이었다. 과거의 식민통치자들이 선심쓰듯 주는 돈을 얻어내기에 급급했다는 게 몹시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그 때의 처지를 감안하면 이해할만한 점이 아주 없지는 않다. 온갖 모멸을 참고 견뎌내야 했을 만큼 우리의 처지가 그 때는 너무 절박했었다.

이 시점에 분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의 길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들의 몫을 국가가 당겨 써버린 측면이 분명히 있다. 또 그들의 희생이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갚아야 옳다.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에게 ‘선진국 열쇠’를 넘겨줄 수 있을 듯이 말하게 된 나라다. 지금에 와서도 그 빚을 모르겠다고 해서는 정부의 도리가 아니다.

국민들도 민족주의적인 결벽증에서는 벗어날 필요가 있다. 처지와 위상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달라진 오늘의 인식 시각 판단으로 과거사를 재단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속이 시원할 수 있어도 결국은 스스로의 상처를 키울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민족공동체 성원 서로간의 사랑과 결속이다.

“로마에 관한 가장 괄목할 일은 로마가 쇠망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오래, 거의 1000년 간이나 존속했다는 것이다.” (크레인 브린튼 외,세계문화사,양병우 역)

사람들은 세계제국 로마의 멸망 요인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물론 쇠망의 원인을 알아 경계로 삼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더 튼튼하게 더 오래 존속하는 길을 찾아내 본보기로 삼는 것은 더욱 현명한 자세일 것이다.

굳이 멀리서 예를 찾을 까닭이 있을까. 우리의 고대 국가 신라도 여덟 해 모자라는 천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고구려 705년, 백제 678년, 고려 474년, 조선 518년 또한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 이들 왕조가 저절로 그처럼 오래 존속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당연히 까닭이 있었을 터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조상들의 못남을 탓하는 데만 익숙해졌을 뿐 그분들의 잘남을 찾아내는 데는 인색하기만 했다.

광복 60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57년이 되는 해다. 언제까지 증오와 저주와 배격과 척결의 대상을 우리 내부에서 찾으려 할 것인가. 특히 정치를 합네, 국민을 위합네 하는 사람들은 제발 단죄 대상 만들기 게임을 이젠 그만둬야 한다. 살림이든 정이든 하나하나 쌓아가는 것이 곧 미래지향적인 순리의 정치다. 우리끼리 이제는 좀 정스럽게 살 때도 되지 않았는가. 한·일회담, 그 시절만해도 천형 같았던 가난을 이제는 멀찌감치 떨쳐버렸는데?.

(국민일보 / 이진곤 논설위원실장 2005-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