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일본해'보다 브랜드 경쟁력 약해

이제 글로벌 기준에 맞는 새로운 명칭이 필요하다

최근 외국에서 ‘동해(East Sea)’를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하는 사례가 자주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국민 감정이 손상되고 또 당장에라도 그 외국에 달려가서 항의를 하고 싶은 것이, 한국인 누구나가 갖고 있는 공통적인 감정일 것이다. 또 거기서 우리는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민족적 연대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러한 점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기업에서 자사(自社) 제품이 잘 팔리지 않는다 하여 과연 소비자를 탓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소비자가 비합리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원칙상, 소비자는 합리적 선택을 하는 ‘경제적 동물’이라는 전제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를 합리적 동물로 전제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합리적 소비자가 우리 회사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문제는 소비자에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 어떤 수험생이 공부는 열심히 하는 데 대입시험에 번번이 낙방한다면, 공부하는 방법에 문제점이 없는지 한번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공부 방법을 재검토하지 않는다면, 그 학생은 영원히 재수학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일본이라면 무조건 쌍수를 들고 반대하고픈 것이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정서다. 그러나 ‘감정적 대응만으로는 결코 일본을 이길 수 없다”는 화두는 이제는 이미 상식이 되어버린 ‘식상’한 이야기가 아닐까.

일본 제품이 우수하다면서 일제 상품만 쓰는 사람도, 일본 거리는 참 깨끗하다면서 혀를 내두르는 사람도, 왜 한일관계에서 만큼은 이성을 상실하고 비합리적인 사람으로 돌변해버리는 것인가.

일본 제품이 더 우수하고 일본 거리가 더 깨끗한 만큼, 한일관계에 관한 일본의 접근법이 우리의 접근법보다 더 우수할 것이라는 생각은 왜 하지 못하는 것일까.

상대가 만만한 나라도 아니고 세계적인 경제·군사 대국인데, 우리는 일본을 마치 3류 개발도상국가 처럼 취급해온 것이 아닐까. 상대방은 이미 대학생인데 우리는 일본을 중학생 쯤으로 치부하고 그저 무시만 해온 것이 아닐까. 20세기가 이미 훌쩍 지나버린 지금, 우리는 언제까지 20세기적 방식에 파묻혀 살 것인가.

우리가 진정으로 ‘극일’(克日)을 하고자 한다면, 식민지 시대의 과거 일본만을 떠올릴 것이 아니라, 21세기 현재의 일본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한번 냉철하게 ‘공부’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객관적인 제3자들이 한국인과 일본인 양쪽에 대해 과연 어떤 상대적 평가를 하고 있는지 하는 점도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것이 비록 우리 자신에게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 있겠지만, 우리 한국이 발전하기 위해서라면 또 우리 민족이 발전하기 위해서라면 그러한 고통쯤은 기꺼이 감내해야 하지 않겠는가.

독도 문제나 동해 표기 문제 등이 터져나올 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격렬한 반일 발언을 내뱉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애국적인 행동이 아니다. 그것이 도리어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오히려 일본을 도와주는 ‘친일적’행위가 될 수도 있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냉정하게 한일관계 전반을 되짚어보고, 차분하게 우리의 대응법을 재검토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 본래의 논의로 다시 돌아가기로 한다. Korea와 Japan 사이에 있는 바다에 어떤 명칭을 부여한다고 할 때, 이 문제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외국의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한다.

한국보다는 일본이 국력이나 로비능력 면에서 더 우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도, 지구상의 어떤 국가도 한국을 아무런 이유 없이 무시할 수는 없다. 일본도 경제대국이지만 한국도 10대 경제대국이다. 일본도 군사대국이지만 한국 역시 손가락 안에  꼽히는 군사강국이다. 그러므로 동해 표기문제에서 우리가 일본에게 밀리는 것을 경제력이나 군사력의 열세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요인이 일정하게 작용하고 있음은 결코 부정할 수 없지만, 보다 중요한 문제점은 우리 자신의 접근법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여기서는 논의의 편의를 위해 경제력이나 군사력 같은 요인을 배제하고, ‘동해’와 ‘일본해’라는 표기 중에서 과연 어느 것이 ‘브랜드 경쟁력’이 더 강한지 하는 점을 외국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기로 한다. 

어느 국가가 지구 반대편의 지명을 표기할 때에는 국제관계는 물론 자국민의 편의도 고려하게 된다. 여기서 ‘자국민의 편의를 고려한다’ 함은, 자국민의 지리적 지식을 제고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고, 또는 자국민의 해외여행이나 무역활동상의 편의를 고려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Korea 주변에 있는 3면의 바다를 모두 동해·서해·남해로 표기한다면, 이것이 과연 그 해당 외국민들의 지리적 지식이나 각종 생활상의 편의를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자기 나라 주변에도 동해·서해·남해가 있을 수 있는데, 한국인도 아닌 그들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바다를 동해·서해·남해라고 부를 이유가 있을 것인지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차라리 ‘한국해’나 ‘일본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면 모를까, 단순히 동해니 서해니 하는 표현들을 지구 반대편 사람들이 과연 손쉽게 그리고 얼른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만약 ‘인도’ 옆에 있는 ‘인도양’(Indean Ocean)을, 예컨대 ‘미얀마’(버마)를 기준으로 하여‘서해’로 부른다면, 이것이 과연 실용적인 표기가 될 수 있겠는가. 한국인 입장에서는 인도와 미얀마 등의 가운데 있는 큰 바다를 차라리 인도양이나 ‘미얀마해’라고 부를 수 있을지언정, 미얀마를 기준으로 하여 ‘서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한다면, 한국인들의 일상생활에도 일정한 불편함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지도를 찾아보면 그런 혼란이 제거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이 궁금한 일이 있다 하여 항상 서적을 뒤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하루종일 연구실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바쁜 사람들이 어떻게 책을 항상 휴대하고 다니겠는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먼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동해보다는 한국해나 일본해라는 표현이 얼른 이해되고 또 오래 기억되기가 쉬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동해’를 제기하고 일본은 ‘일본해’를 제기했다면, 객관적인 제3자가 보기에는 일본측 표현을 사용하기가 상대적으로 더 수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또 한가지 인식하지 않으면 안되는 점이 있다. 지구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신속히 통합되는 상황 속에서 우리의 기준만으로 세상을 평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모든 국가가 다 자국의 기준만을 고집한다면, 온 세상에 ‘동해’는 수없이 출현할 것이다. 이는 지금 진행되는 글로벌화 경향에도 부합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한국인도 아닌 외국인들에게 동해·서해·남해같은 명칭을 강요하는 것은, 달리 말하면, 한국인도 아닌 그들에게 한국 중심으로 세상을 인식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외국의 관점으로 세상을 인식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남에게 우리 기준만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동지나해·난지나해같은 명칭들은 중국을 기준으로 한 것이지만, 이는 전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중국의 국력이 강해서 그렇게 된 측면도 있겠지만, 동지나해·난지나해가 중국이라는 큰 대륙 옆에 있기 때문에 그러한 명칭이 상대적으로 현실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동해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한국의 국력이 일본의 국력을 능가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해 옆에는 한국 영토만 있는 게 아니라 한국의 몇 배가 되는 일본 영토도 있다. 여기에 객관적 명칭인 ‘한국해’라는 명칭을 부여하려고 해도 힘이 상당히 벅찰 텐데, 한국인의 주관적 기준에서 나온 ‘동해’를 고집한다면 이는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일본해’를 그냥 인정해버리자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동해가 일본해로 ‘둔갑’하는 것을 결코 방관하거나 묵인할 수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인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동해 명칭을 마냥 고집할 수만도 없다. 여러 번 강조한 바와 같이, 글로벌화되는 세계 속에서 동해라는 명칭은 브랜드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해 표기 문제에 있어서 좀더 글로벌화된 명칭을 찾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동해를 어떤 명칭으로 부를 것인가에 대해서는 앞으로 국민적 논의가 더 필요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기존에 나온 ‘한국해’라는 표현을 포함한 다양한 표기를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예컨대’ 한국해를 내세운다면, 외국 입장에서는 한국해와 일본해 중에서 일본해를 선뜻 취하기가 힘들 것이다. 한국과의 외교관계를 전연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해를 사용하기 싫으면 차라리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倂記)하라”고 말하지만, 외국 입장에서는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한국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는 게 훨씬 수월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편이, 병기를 요구하는 한국 입장에서도 명분이 생기는 것이고, 또 그 외국의 입장에서도 일본에 대해 할 말이 생기는 것이다.

아무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해도 일본해도 아닌, 글로벌 기준에 맞는 독자적 명칭을 새롭게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그런 글로벌화된 명칭을 갖고서, 그같은 브랜드 가치가 높은 표현을 갖고서, 일본이나 제3국에 대해 우리의 주장을 내세워야 할 것이다. 

이 글의 의도는, 우리의 동해 표기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하는 점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다른 나라들도 우리처럼 동해라고 불러준다면, 그보다 더 반가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이제는 우리 자신의 문제점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자책’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독도나 동해 문제를 포함해서 한일관계 전반에 대한 우리의 기존 접근법이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기준에 맞지 않는‘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자책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민족주의가 강렬하게 확산되고 있지만, 그것은 주로 정치·군사적인 측면이다. 경제·문화적 측면에서는 세계주의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그러므로 민족주의와 세계주의를 함께 고려하는 균형된 자세를 취해야만 우리의 국익을 보다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TV 뉴스에서는 한국뿐만 아니라 저 멀리 유럽의 날씨까지 예보해주고 있는데, 우리의 의식은 아직도 한국에만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결코 강하고 위대한 민족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한일관계에서 글로벌화된 접근법을 강구하는 것만이 진정한 극일의 길이자 민족생존의 길임을 자책하는 것이 이 글의 의도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김종성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20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