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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사찰이 잿더미로 변하다니"
무너져 내린 기와엔 여전히 뜨거운 열기
낙산사 화마와 수차례 악연,의상대.홍연암 `구사일생'
"여기가 천년 사찰이었던가.."
5일 한국불교사에서 관음보살 신앙의 본향이자 관동팔경의 하나로 불교신자와
관광객들의 발길이 한시도 끊이지 않았던 낙산사의 모습은 강원도 양양에서 발생한
산불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잿더미외에는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다.
막바지 잔불정리 과정에서 눈에 보이는 것은 숯으로 변한 목조 건물의 잔해뿐이
었고 천년 고찰의 장엄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한마디로 전쟁의 폐허 그 자체였다.
다만 무너져 내린 건물 기와와 인근 담에서 아직 손을 대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
운 열기가 남아 낙산사를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든 화마의 엄청난 기세를 느끼게 했다.
스님들이 오전에 물을 뿌리며 사수작전을 폈던, 관음보살을 모신 원통보전과 홍예문, 요사채 등의 목조건물들도 몇 시간전의 모습을 도저히 떠올릴 수 없을 정도
처참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낙산사와 화마의 악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낙산사는 고려 1231년 몽골 침입 때 완전히 불에 탄 적이 있고 이를 조선 세조
때 중창했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맞아 또 잿더미로 변하는 고행(?)을 되풀이
했다.
그 뒤 명맥만 이어오다 구한말에 와서 절의 모습을 되찾았지만 6.25전쟁때 또
한번 화마를 온몸으로 맞아야 했다.
원통보전 앞에 있는 조선 세조때 세운 7층 석탑(보물 499호)은 이런 화마의 현장에서 화염속에 속수무책으로 주저앉는 낙산의 모습을 떠나지도 못하고 지켜야만
했다.
이 탑은 6.25전쟁때 포탄을 맞기도 했고 당시 절이 불 탔을 때도 혼자서 자리를
떠나지 않고 속을 다 태웠고 오늘 또 다시 비운을 되풀이했다.
구사일생으로 바닷가 소나무 숲 옆에 있던 홍연암은 소방대원들의 노력으로 바로 앞에 있던 요사채가 모두 잿더미로 변했지만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인근의 의상대도 다행히 화염에 휩싸이지 않아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소방대원들은 다시 접근할 지도 모르는 화마에 대비하기 위해 의상대 안에서 비상대기
하고 있다.
671년(신라 문무왕 1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낙산사는 몇 차례 중건됐으나 6.25
전쟁으로 소실됐다가 1953년에 다시 창건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낙산사에 있던 조선시대 초기유물인 7층 석탑(보물 499
호)과 건칠보살좌상(보물 1362호), 동종(보물 479호) 등 보물 3점은 모두 무사하다"
고 이해찬 총리 주재 산불관계장관회의에서 보고하면서 낙산사의 원통보전은 6.25전
쟁으로 불타 1953년에 다시 건립한 건물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 이해용 기자 2005-4-5)
< 동해안 산불 > 낙산사 정념스님 "불길 순식간 덮쳐"
"문화재 미리 옮겨 피해 없어"
"오전까지만 해도 불길이 잡혀 다행이다 싶었는
데, 오후에 갑자기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낙산사로 덮쳐왔습니다."
강원도 양양 지역에 발발한 산불로 인해 대웅전이 전소되는 등의 피해를 본 낙산사(洛山寺) 주지 정념 스님은 5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화마가 덮칠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털어놨다.
정념 스님은 "이날 오전 양양에 불길이 잡히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하지만 오후 2시가 넘어 강풍을 타고 불씨가 4차선인 7번 국도를 뛰어넘어 사찰로 달려
들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낙산사 대웅전을 중심으로 모두 12채가 소실되는 피해를 봤지만 낙산사 스님들의 대비와 신속한 조치로 최악의 피해는 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념 스님은 "산불이 불어닥치기 직전인 오후 2시께 나쁜 예감이 들어 스님들을
총동원해 소방차 2대 등으로 전각마다 물을 뿌리는 한편 소화기 150개를 구해와 소화액을 살포했다"고 밝혔다.
이 결과 사찰의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의상기념관, 보타전, 홍련암, 교
육원 등은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오후 3시 10분께 절에서 탈출했다는 정념 스님은 이어 "원통보전에 봉안된 부처님(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1362호)과 후불탱화 등도 불이 옮겨붙기 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며 "불길이 닥치자 스님들에게는 긴급 대피령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낙산사는 2년 전 산불에 대비해 지하에 보전실을 만들어 놓았다.
(연합뉴스 / 이봉석 기자 2005-4-5)
정념 주지스님 “낙산사 전소는 人災”
잿더미로 변한 천년고찰 낙산사는 잔불 정리를 잘했더라면 화를 피할 수도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낙산사 주변에 꺼진 불을 가볍게 보고 일부 진화용 헬기들이 고성산불지역으로 이동하고 남은 헬기들도 연료공급을 위해
속초공항으로 이동한 사이에 강풍을 타고 잔불이 낙산사를 덮쳤기 때문이다.
낙산사 정념 주지스님은 5일 “아침에 헬기가 물을 뿌린 다음 잔불 정리를 확실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성 산불쪽으로 옮겨갔다”며
“낙산사에는 유물이 많으니 확실히 소화를 해야 하니까 헬기를 남겨달라고 했으나 철수시켰다”고 주장했다.
정념 스님은 “산불이 나 부랴부랴 구입한 소화기 150대로 자체 진화작업을 벌였지만 낙산사를 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덧붙였다.
주지스님의 말대로라면 산불 진화 현장을 지휘한 현장 대책본부측이 상황판단을 잘못해 낙산사가 불에 탔다는 뜻이 된다.
소방당국이 오전 양양산불이 잦아들자 이 지역에 투입한 소방헬기 14대 중 4대를 비무장지대인 고성산불 지역으로 이동시켜 양동진화작전에
나섰다는 것. 그러나 오후부터 바람이 거세진다는 사실은 간과해 바람이 강해지자 남아있던 불씨가 되살아났고 낙산사 쪽으로 옮겨왔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변상호 강원도 소방본부장은 “진화 헬기 통제는 원칙적으로 산림청에서 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낙산사 화재 당시 헬기는 8대가
있었으나 속초공항으로 연료를 채우러 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양양산불 현장에서 헬기를 지휘하고 있는 김용하 산림청 산림항공관리소장은 “이날 오전 11시까지 양양지역서 지휘를 했으나 대책본부나
낙산사측으로부터 헬기를 남겨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 낙산사 주변에는 잔불만 남아있었고 고성산불이 급해 일부
헬기를 보내고 일부는 내륙쪽 산불을 진화했다”고 말했다.
한편 조연환 산림청장은 현장에서 “이날 오후 2시쯤 낙산사측으로부터 진화 요청을 받았지만 당시 강풍이 너무 심해 헬기를 띄울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강원 양양산불 현장대책본부는 강원도지사·강원도 소방본부장·양양군수로 구성돼 있다.
(경향신문 / 곽태섭 기자 2005-4-6)
소방당국 대처 문제점
꺼져가던 강원 양양지역 산불이 커진 것은 소방당국이 잔불을 제대로 끄지 않고 판단을 잘못하는 등 안이한 대처와 인력과 장비의 부족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소방당국은 5일 오전 강원 양양지역의 산불이 잦아들자 초기 진화에 성공한 것으로 판단, 이 지역에 투입했던
소방헬기 14대 중 4대를 비무장 지대인 고성 산불지역으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소방당국이 봄철에는 오후부터 바람이 거세진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야속하게도 이날 오후 1시부터 최고 초속 32㎞를 넘는 강풍이 건조주의보가 내려진 이 지역에 불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꺼져가던 잔불이 다시 살아나면서 천년 고찰 낙산사 쪽으로 번져갔다.
그제서야 소방당국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헬기를 양양쪽으로
다시 돌렸지만 이미 낙산사는 불길에 휩싸여 재로 변해 버렸다.
낙산사 주지 스님은 “오늘 아침 헬기가 물을 뿌린 다음에 잔불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고성으로 가버렸다”며 “‘낙산사에 유물이 많으니 불을 확실히 끌 수 있도록 헬기를 남겨달라’고 부탁했지만 너무 빨리
철수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낙산사측은 이날 오전 긴급 구입한 소화기 150개를 이용, 자체적으로 불길을 잡으려 했지만 양양
지역을 휘감은 산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화재 전문가들은 “현재 소방인력과 장비로는 제대로 대형 산불을 진화할 수 없다”며
“초대형 헬기를 늘리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숲이 우거진 산에 불이 나면 일반 소방 장비로는 제대로 끌 수 없어
헬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산림청이 보유한 헬기 41대 가운데 산불 진화에 적합한 초대형 헬기는 2대(1대 임차)에 불과한
실정이다. 초대형 헬기는 2001년에 한 대를 구입한 뒤 올해 한 대를 더 추가 구입키로 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한 대를 임시로 빌려 쓰고 있는
실정이다.
산림청은 대형 헬기 26대, 중형 헬기 12대를 보유하고 있지만 이들 기종은 산불 진화에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초대형
헬기가 한번에 실어 나르는 물의 양이 1만ℓ인 반면 대형 헬기 3,000ℓ, 중형 헬기 1,000ℓ에 불과하다.
특히 중형 헬기는
초당 20㎙ 이상의 바람이 불면 비행하기도 어렵고 물을 투하해도 바람에 날리기 때문에 이날 강원 양양지역에는 한 대도 투입되지 못했고 초대형
헬기 2대와 대형 헬기 14대 등 16대만 투입됐을 뿐이다.
(한국일보 / 권대익 기자 2005-4-6)
산불 왜 커졌나…산맥 넘는 ‘푄 현상’ 탓강원도 양양군의 산불은 5일 오전 잔불 수준으로 진화됐다가 오후 1시30분 강풍을 타고 확산됐다. 소방당국은 오후 2시가 넘으면
동풍(東風)이 불 것으로 예상, 산불이 백두대간 쪽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서쪽전선의 잔불 정리에 전력 투구했다.
통상 오전엔 서풍(西風)이 불지만, 대낮엔 바닷바람이 세지면서 동풍으로 바뀌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기대하던 동풍이
아니라 오히려 서풍이 더 강하게 불어댄 것이다. 이에 따라 산불은 강원도 동해안 쪽으로 급속히 내려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방당국은 이날 헬기 18대를 가동했으나 역부족이었다고 밝혔다. 소방본부의 한 관계자는 “바람이 이렇듯 갈지자로 불어오면 불가항력이다”고
말했다.
이날 바람은 ‘푄’(산을 넘어 불어내리는 돌풍적이고 건조한 국지풍). 보통 3월 20일부터 4월 말까지 강원도 영동지방에서 극성을 부린다.
양양군과 고성군 간성읍 사이를 지나 ‘양간지풍(襄杆之風)’이라고도 불리는 이 바람은 이 지역 산불을 꾸준히 키워 왔다. 김은기(金殷起)
산림정책관은 “백두대간 준령을 넘은 바람이 저지대를 만나면 바람의 세기가 급격히 강해지는 푄현상 때문에 작은 불씨가 큰 불로 커진다”고 말했다.
1980년 이후 영동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의 76% 이상이 이 기간에 발생했다.
이날 양간지풍은 초강풍이었다. 이날 오전 5시 현재 순간 최대 풍속이 미시령 초속 37m, 양양 26m, 속초 21m나 됐다. 초속
20m가 넘으면 바람을 안고 걸을 수 없다.
또 이 바람은 하루에 온 산을 건조시킬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 양양지역에는 지난 3일 7㎜ 가량의 비가 내렸으나 이 바람이
지나간 주변은 모래바닥처럼 뽀송뽀송해져 그 힘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조선일보 / 김창우 기자 20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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