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과거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
2005년은 한일관계에 있어서 매듭이 많은 해이다. 광복 60주년이자 국교정상화 4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이를 기념하여 양국 정부는 올해를 '한일 우정의 해'로 정하였다. 양국 간의 교류를 확대함으로써 굴곡 많았던 과거를 잊고 새로운 한일관계를 정립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시마네현의 '독도의 날' 제정을 전후하여 촉발된 양국의 갈등은 그런 의도와는 정반대로 한일관계를 험악한 상황으로 치닫게 하였다. 더구나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변명하고 미화한 역사교과서가 문부성 검정을 통과함으로써, 우리의 반일 감정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물론 극우파들의 망언이 계속된 것은 한두 해가 아니지만, 일본의 양심적 언론과 지식인의 우려를 뿌리치고 우경화를 가속화하는 작금의 일본 상황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고민하게 한다. 그들의 독도문제 주장이나 역사왜곡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그들의 망언에 대한 감정적인 대응이나 단편적인 대책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아무리 흥분하고 강력하게 항의를 하더라도 일본의 망언과 터무니없는 주장은 근본적으로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해마다 계속되는 일본의 망언의 본질과 배경을 이해하고 그에 입각한 현실적인 정책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역사적 진실과 국제법적 근거를 심도 있게 검토하여 우리 정책의 대외적 타당성을 마련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상대방에 대해 더 이상 ‘싫다, 좋다’와 같은 감정적인 대응이 아닌,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이성적이고 냉철한 분석이 필요한 시기가 된 것이다.
국제법 학자인 대전대 법학과 이창위 교수가 쓴 <일본제국의 흥망사>는 과거 군국주의 일본의 침략과 패망의 과정을 우리의 눈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으로,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자료가 될 것 같다. 저자가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오늘의 일본은 결국 일본제국이라는 밑그림 위에 덧칠된 그림이기 때문에, 그러한 일본의 과거를 이해함으로써 현재의 일본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안목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일본의 군국주의는 한반도 강점의 배경이자 지배논리였으며 해방 이후 한국 군사문화의 뿌리라고 할 수 있으므로, 우리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도 전혀 무관하지 않다. 그동안 양심적인 일본 학자들이 자신들의 전쟁책임에 대해 소상히 기술한 책은 있었지만, 한국인의 시각으로 일본제국과 군국주의를 꼼꼼하게 분석한 책은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대일외교전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이즈음 읽어두면 좋은 책이라고 판단하였다.
특히 군사대국화를 시도하는 일본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동시에, 우리가 앞으로 어떤 행보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절실함마저도 가지게 되었다. 더구나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월 말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읽었고, 독도와 교과서 왜곡 문제로 한일 외교전이 벌어진 이후 이 책을 손에서 떼지 않는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은 일본의 침략전쟁 과정에 있어서 군부가 보인 이해 불가능한 심리와 무모한 행위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다. 왜 일본은 현격한 국력의 차이를 외면하고 대미개전을 감행하였는가. 전쟁지도자들의 광기와 오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포로학대, 고문, 난징대학살, 카미카제의 야만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천황을 정점으로 한 비이성적 명령체계는 왜 그렇게 엄격했던가. 이창위 교수는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일본 군국주의의 형성과 발전의 과정에서 찾고 있다.
이 책은 우선 러일전쟁으로 촉발된 일본 군국주의와 파시즘의 형성과정, 지식인들의 선동 그리고 제국주의에 대한 일본국민들의 지지를 살펴보고 있다. 특히 대륙침략 시기의 일본 정부와 군부의 정책결정 과정을 파악하여 제국주의 일본이라는 국가의 권력구조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강대국으로 국제사회에 진출한 결정적인 계기는 러일전쟁에서의 승리였다. 그런데 대륙침략을 도모하기에 앞서 대륙과의 교량 역할을 하는 우리 나라에 대한 지배를 확보함으로써 그들은 국력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것이 지나쳐 자만심과 착각에 빠지는 우를 범하게 되었다. 그렇게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국제정치의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일본은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가 되어버렸다.
즉, 러일전쟁의 승리로 대륙침략을 본격화한 일본은 조선병합, 시베리아 출병, 만주사변, 5·15사건, 2·26사건, 중일전쟁 등을 통하여 군부파쇼체제를 확립하고 대미개전에 이르며, 결국 원폭세례라는 파국적인 형태로 패망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은 더 이상 어두운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냉전 종식 이후 재편된 국제질서가 일본으로 하여금 더 이상 경제대국의 지위에 안주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북한의 핵 문제가 국제사회의 현안으로 등장하면서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상대적으로 용인되고 있다.
미국은 앞장서서 일본의 헌법 개정과 군사력 증강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결국 헌법을 개정하여 군사력의 보유를 완성할 것이다. 우리 나라와 중국이 반대하고 있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의 진출 시도도 그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일본제국의 아시아 침략과 패망의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런데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일본이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동안, 우리는 초라한 조연으로 일본에게 끌려 다녔다. 그렇게 서글펐던 우리의 역사를 반성하고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는 일본의 침략과 패망의 역사를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현재 한일 양국의 국민들은 3분의 2 이상이 전후세대이다. 과거에 대한 부담을 털고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기에 어쩌면 안성맞춤인지도 모른다.
보다 합리적인 한일관계를 이끌 수 있도록 일본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들의 미래를 예측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오마이뉴스 / 오세훈 기자 200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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