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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화해를 위해서’…욕 먹을 각오로 쓴 반일감정 비판
한·일 양국의 화해를 위한 노력은 요즘 내놓고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반일감정에 경도된 여론은 화해니 중재니 하는 말을 종종 친일과 굴욕으로 해석하며 난타한다. 지난해 서울대 이영훈 교수가 여기에 당했고, 올해 가수 조영남이 다쳤다. 박유하 세종대 일문과 교수가 쓴 ‘화해를 위해서’ 역시 욕 먹을 각오가 없었다면 내기 힘든 책이다. 그는 지난 2000년 친일파로 불려도 좋다는 심정으로 한국인의 반일감정을 비판한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를 쓰기도 했다. 그는 용감하게도 뇌관을 곧바로 건드린다. 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 신사,독도 문제 등 네 가지 쟁점을 꺼내 사실과 오해를 가리고, 우리의 반일감정을 형성한 인식이 과연 사실이냐고 묻는다. 박 교수는 먼저 ‘반성과 사죄를 모르는, 식민지 지배와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역사를 미화하고, 다시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본’이라는 틀에 박힌 이미지를 따지고 든다. 그에 따르면 이같은 일본 이미지는 일본의 전후 60년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명백한 인식 오류이다. 박 교수는 일본의 전후 60년은 크게 보아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반성의 역사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패전 직후부터 교과서에 자신이 저지른 일을 반성적이고 비판적으로 기술해 왔으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현재의 양심적 지식인들과 시민들이 태어나고 성장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왜 일본 사회에서 우경화 분위기가 확산된 것일까. 1993년 이후 미야자와-호소카와-무라야마로 이어지는 일본 정부의 대외적 공식 사죄발언이 그 계기로 작용했다는 박교수의 분석은 흥미롭다. 과거의 전쟁이 잘못된 전쟁이었다고 보는 역사관이 팽배한 분위기에 불만을 품고 있던 일본 우파들은 이른바 ‘자학사관’을 극복하자면서 ‘새로운역사교과서를만드는모임(새역모)’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박 교수는 “새역모와 후소샤의 새 역사교과서는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확대된 현상이 아니라 ‘반성하는 일본’이 문제시된 사건”이라고 분석한다. 이처럼 일본의 전후 60년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현재의 갈등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가진다. 교과서 문제 뿐만 아니라 위안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도 일본의 지나친 반성에 대한 반동에서 나온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 이들 문제가 한일간의 현안 이전에 제국주의 일본이라는 과거사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청산할 것인지에 대한 일본 내부의 오랜 논쟁이라는 점도 유념할만 하다 (박유하·뿌리와이파리). (국민일보 / 김남중 기자 2005-9-23) 교과서·독도 등 갈등 한국과 일본은 공범?박유하 교수(세종대 일문과)는 말하자면 ‘지일파’라 할 수 있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일본 유학길에 올라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그 뒤 저술과 번역, 출판 기획과 학술 모임 등을 통해 한국에 일본을 알리는 데에 힘을 쏟고 있다. 그의 두 번째 한국어 저서인 <화해를 위해서>는 한·일 두 나라 사이에서 양쪽을 소개하고 이해 및 화해시키고자 하는 작업의 소산이다. 교과서, 위안부, 야스쿠니신사, 그리고 독도라는 네 가지 소재를 다루는 이 책에서 지은이 박 교수가 취하는 관점은 ‘사이’ 또는 ‘경계’의 그것이라 할 만하다. 그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더 나아가 한국 내부의 어떤 ‘사이’와 일본 내부의 어떤 ‘사이’에서 발언하고자 한다. 그는 무엇보다도 사태에 대한 본질주의적이며 민족주의적인 접근방식을 경계하고자 한다. “‘일본’이나 ‘한국’이라는 이름을 호명하기 전에 일본의 누가, 한국의 누가, 그리고 그들의 어떠한 사고가, 내부/외부의 타자를 지배와 폭력의 대상으로 삼도록 했는가를 섬세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한쪽의 일방적인 책임 추궁과 다른 한쪽의 뻔뻔한 책임 회피가 아니라 “한일이 함께 ‘책임’과 연대의 주체가 될 때” 두 나라 사이의 진정한 화해와 협력은 가능할 것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박 교수의 그런 지적은 일단 옳다. 특히 우리 안의 맹목을 지적하며 사태의 복합적인 측면을 이해해야 한다는 그의 목소리에는 경청할 대목이 적지않다. 그러나 구체적 사안에 대한 진단과 처방으로 들어가면 수시로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가령 그는 “일본의 군사화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에 대해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위안부 문제를 다루면서는 미군 기지촌의 존재를 거론하면서 “한국과 일본은 공범관계일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위안부들이 이른바 ‘상업적’ 여성들과 자신들을 구별하는 것 역시 차별적 시선의 소산”이며 “정대협(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과 위안부의 발언이 특권적인 정치적 올바름이 되어 있”는 현실을 비판한다. 독도 문제의 해결책으로 “독도를 양국의 공동영역으로 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한다. 그의 논리에서는 침략자 일본과 피지배자 한국이 등가로 취급된다. 양쪽이 다 잘못을 저질렀고 똑같이 참회해야 한다는 식이다. 독도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는 “소통하기 위한 경계가 되어야 한다”고 쓰는데, 그것은 ‘지일파’인 자신의 처지를 독도에 투사한 발언으로 읽힌다. 그러나 그의 글에서 엿보이는 이상주의 또는 근본주의는 역사적·현실적 맥락과 접점을 찾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겨레신문 / 최재봉 기자 2005-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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