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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망해야 실상사가 흥한다"
<우리 문화유산 되짚어보기 19> 보물 제37호 '실상사 3층석탑'
황금빛 들판 한가운데 자리잡은 구산선종 최초의 절 '실상사'
하지만 이 절도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불에 몽땅 다 타버린다. 기록에 따르면 서기 1498년 세조 때 원인 모를 불에 타 없어졌다 하기도 하고, 정유재란 때 왜구들이 조선의 기운을 꺾기 위해 전각 모두를 모조리 불태웠다고도 한다. 그때 이 곳에 남아 있었던 것은 불에 타지 않는 철불(보물 제41호)과 석탑(보물 제37호), 석등(보물 35호)뿐이었단다.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하고, 일본이 망하면 살상사가 흥한다 그래서일까. 호국사찰 실상사에는 일본, 즉 왜구에 얽힌 설화가 유난히 많이 남아 있다. 안내자료에 따르면 "약사전에 모셔놓은 약사여래불은 천왕봉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 천왕봉 너머에는 일본의 후지산이 일직선상에 놓여져 있다"고 한다. 바로 이 때문에 절의 배치도 일본이 있는 동쪽을 향해 마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절에는 예로부터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하고, 일본이 망하면 실상사가 흥한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또한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경내의 보광전 안에 있는 범종에는 일본 열도 지도가 그려져 있으며, 스님들이 예불을 할 때마다 종에 그려진 일본 열도를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른 아이의 종아리에 회초리를 치듯 마구 두들기고 있다.
실상사는 우리나라에서 단일 사찰로는 가장 많은 수의 국보와 보물을 가지고 있는 절로도 유명하다. 국보 제10호인 '백장암 3층석탑'을 비롯해 보물 제33호인 '수철화상능가보월탑(秀澈和尙楞伽寶月塔)', 보물 제34호인 '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 보물 제36호인 '부도(浮屠)', 보물 제37호인 '3층석탑' 2기(基)가 있다. 또한 보물 제38호인 '증각대사응료탑(凝寥塔)'과 보물 제39호인 '증각대사응료탑비', 보물 제40호인 '백장암 석등', 보물 제41호인 '철제여래좌상(鐵製如來坐像)', 보물 제420호인 '백장암 청동은입사향로(靑銅銀入絲香爐)', 보물 제421호인 '약수암목조탱화(藥水庵木彫幀畵)' 등도 있다. 한 마디로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문화유산인 셈이다. 한 번 더 침략하면 일본 열도를 단칼에 베어 동해의 다도해로 만들리라 실상사는 나그네가 지난 해 시월 이맘 때, 지리산 계곡이 단풍빛에 젖어 불이 난 것처럼 발갛게 불탈 때 조경국, 최경호 기자와 함께 다녀온 곳이다. 하지만 올해는 그 곳에 다녀오지 못했다. 눈을 뜨고 있어도, 눈을 감고 있어도 자꾸만 떠오르는 그 곳. 황금들판과 절 황토마당에 노랗게 떨어지는 은행잎이 마음을 한없이 저리게 하지만 아직까지도 어쩌지 못하고 있다. 그날, 나그네는 천년 고찰 실상사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가을풍경과 너무나 많은 국가지정문화재를 한꺼번에 본 탓인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빨갛게 물든 단풍잎이 석탑의 지붕돌 같기도 하고, 짙푸른 가을하늘이 부처님의 피안의 세계 같기도 했다. 또한 이 문화유산이 아까 본 저 문화유산 같기도 하고, 저 문화유산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문화유산 같기도 했다.
근데, 하필이면 왜 두 개의 멋들어진 쌍둥이 돌탑이 나그네의 눈에 그렇게 무섭게 비쳤을까. 이는 아마도 이 절 곳곳에 우리나라를 끊임없이 괴롭혀온 일본, 불교에서 말하는 마장을 이겨내기 위한 보살들의 정기 같은 것이 배어 있기 때문이리라.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는 일본의 음모가 저 쌍둥이 탑 앞에 시커먼 그림자로 늘어뜨려져 있기 때문이리라. 돌탑의 아름다운 머리 장식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이 특징 보물 제37호 실상사 삼층석탑(實相寺 三層石塔). 실상사 보광전 앞뜰에 동, 서로 뾰쪽하게 세워져 있는 이 쌍둥이 돌탑은 2층으로 된 기둥돌(基壇) 위에 3층의 몸돌(塔身)을 올리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우리나라 절마당 곳곳에 서 있는 대부분 돌탑들이 머리 장식이 사라지고 없는 것에 반해, 이 쌍둥이 돌탑은 모두 아름다운 머리장식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개의 돌탑은 증각대사 홍척이 풍수지리설에 따라 '이 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하여, 실상사를 처음 지을 때 세운 탑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누가 언제 이 쌍둥이 돌탑을 세웠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다. 다만,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것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 돌탑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날, 나그네는 쌍둥이 돌탑을 오래 바라보다가 쌍둥이 돌탑 꼭대기에 앉은 부처님의 모습을 보았다. 짙푸른 하늘을 품고 있는 부처님께서는 나그네에게 네가 가지고 있는 것, 네가 바라는 것 모두를 몽땅 버리라 했다. 단풍빛 예쁘게 매단 저 나무들도 그 예쁜 단풍잎을 버리고 모진 겨울을 이겨낸 뒤에서야 비로소 새로운 희망의 파아란 새싹을 내밀 수 있다며. (오마이뉴스 / 이종찬 기자 200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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