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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미래 내다보는 한·일관계를
9월 개최된 유엔 총회에서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확대논의를 진전시키는 데 끝내 실패한 일본은 요즘 실망한 기색이 완연하다. 일본의 안보리 진출을 공개적으로 반대해 온 중국, 겉으로는 아니더라도 내심 반대하는 입장에 섰다고 보는 한국에 대한 원망은 물론이고, 일본 정부의 염원을 끝내 저버린 미국에 대해서까지 섭섭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상임이사국의 전체 몫보다도 많은 유엔 분담금을 내는 일본을 이렇게 푸대접하니 앞으로는 유엔에 대한 재정적 기여액수를 삭감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일본 외상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21세기의 유엔을 아직도 1945년 2차대전의 승전국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시대착오적 현상이다. 일본, 독일과 같이 ‘평화국가’로 환골탈태하여 유엔의 역할 확대와 위상 제고에 앞장서 온 국가에 유엔이 보다 큰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논리는 분명 설득력이 있다. 대륙 간 안배 차원에서 인도·브라질과 같은 거대국가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 세계정치 무대에서 불모지로 취급돼 온 아프리카연합(AU) 국가들의 집단적 위상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계 평화의 마지막 보루인 유엔도 결국 국가 간 권력정치의 표상이며, 일단 확보한 권력은 좀처럼 놓으려 하지 않는 국가의 속성이 엄연히 적용된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안보리 개혁에서 연임 가능한 10개 비상임이사국을 추가하자는 의견을 개진해 왔으므로, 상임이사국을 희망하는 일본의 입장과 상충된 목소리를 낸 결과가 되었다. 동북아시아에서 상임이사국이 하나 더 나오도록 하여 지역의 위상과 이해관계를 강화시켜보자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과거사의 굴레에 묻혀 도덕적 리더십을 겸비하지 못한 일본을 국제무대의 중앙에 진출하도록 허용해서는 곤란하다는 정서도 만만치 않다. 여기서 또 부인할 수 없는 추가적 요인은, 한국의 의사나 의지와 관계없이 중국이 일본을 지역 라이벌로 의식하여 당분간 안보리의 확대를 차단하는 외교를 적극적으로 펼 것이라는 점이다. 한일 관계는 유엔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여러 면에서 정체상태에 빠져 있다. 6자회담에서 핵 해결의 원론적 합의까지는 이르렀지만 북한의 경수로 요구에 대한 한국의 태도는 일본의 부정적 입장에 비해 관대하게 비쳐졌다.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의 당위성에는 일찌감치 공감해 놓고도 실천 의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독도와 교과서 문제로 얼룩진 올해 상반기의 한일 관계는 그야말로 절친한 우방국끼리 외교전쟁을 방불케 하는 입씨름으로 점철된 바 있다. 서로가 상대방 지도부의 처신을 원망하고 있다. 반면, 국민 수준에서의 한일 관계는 전혀 딴 모습을 보인다. 하나의 한국 드라마에서 비롯된 일본 내 욘사마 열풍은 다른 배우와 다른 영화에 대한 애착으로 번져 나가고 있다. 그간 비자 면제 특별기간에 부응하여 보다 많은 한국인이 일본을 다녀왔고, 한국과 일본이 서로의 문화를 즐기고 소비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정부 수준에서의 한일 관계가 불편한 동거를 지속하는 동안 민간 차원의 양국 관계는 세련된 복합 상호의존 관계에 접어들어 있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불편한 과거사의 장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점점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것은 바로 ‘자유’와 ‘시장’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북한과 중국의 눈치를 보며 일본과의 관계를 조절할 필요는 없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도덕과 윤리의 잣대로 일본의 모든 것을 일반화하는 과거 지향적 사고를 탈피하는 일이다. 앞으로 긴 시간 동안 일본과 협력하며 서로에게 좋을 일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미래지향적 사고가 필요하다. 정부의 눈높이를 국민의 시각에 맞춰 상향 조정해 보자. (세계일보 200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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